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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살까?
잠든 아들 얼굴을 가만히 본다. 아빠의 마음도 나와 같았을까? 가슴 속 무언가 저릿한 느낌, 책임감인지 사랑인지 뿌듯함인지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감정. 내 아들을 보며 아빠의 삶을 거꾸로 더듬어 본다.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지금, 잘 해야지.. 조금씩 나도 아빠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제, 남은 내 삶에서 계속된 새로운 도전이다.
아빠 같은 아빠라도 될 수 있을까.
수학여행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20대의 많은 추억이 담긴 제주도, 지금 아내와의 추억이 있는 30대의 제주도. 그래서 뭉클했다. 위로를 주었던 곳, 때로는 도피하러 갔던 곳. 제주도에서 지나쳤던 골목 골목길들, 유명하지 않은 어느 동네 카페들, 북적이거나 조용했던 게스트하우스들, 그때 그때마다 달랐던 바람냄새들. 그런 것들이 기억나서 아련했고 뭉클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앞날이 그렇게 불확실해서 불안했었는데. 어느덧 지금은… 세월의 다양한 흔적이 있는 여행지는 그래서 아름다운가보다.
세 살 아들을 온전히 내 힘으로 재웠다. 아내가 약간의 감기 증상이 있어 평소와는 달리 내가 아들 밤잠을 전담한 셈이다. 지금껏 아들과 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놀았다고 자부한다. 늘 내게 달라 붙고 방방뛰며 방긋방긋 반응해 준다. 더욱이 엄마라는 단어보다 아빠라는 말을 더 많이 내뱉는다. 그러나 밤잠을 잘 때 만큼은 엄마 품이 좋았는지, 밤잠 투정은 여간해서는 내가 다독일 수 없었다. ... 아니 노력을 안 했던 것 같다고 오늘 결론을 내렸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충분히 울지 않고 나 혼자 재울 순 있지만, 같은 공간에 엄마가 있다면 잠투정이 심한 아들이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작정하고 아들을 재우길 시도했는데, 10분 정도 만에 곯아 떨어지게 만들었다. 너무 뿌듯했다. 어느 육아 서적에선가 티비 프로..
올해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과 업무를 맡으며 정신없는 한해를 보냈다. 기간제 시절 일과 3년을 내리 하고, 이제 내 교직 업무에 수업계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는 듯이. 아마도 지금까지의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퇴직한 교장과 지금의 교장의 합작품인 듯 하다. 나를 관망했다나 뭐라나.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첫 눈에 딱 알아봐야지, 안 그래? 나 정도 사람을 단박에 알아 보지 못했다면 그거 문제 있는 거다. 아무튼 평소 성질 다 죽이고, 직장에서는 딱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나름 잘 해내왔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무럭무럭 잘 자란다. 아들이 커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가장 큰 행복이다. 그리고 가끔씩 우리 부부에게 주어지는 휴식 시간, 데이트 시간은 그야말로 꿀 같은..
아들이 태어난지도 곧 있으면 두 달째다. 나를 쏙 빼닮은 녀석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 설명하기 벅찬 감정이 치솟지만, 나 자신이 체력적으로 힘들 때는 가끔씩, 엉엉 우는 내 아들 녀석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스스로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나보다 더 고생하는 내 아이의 엄마를 보면, 늘 코끝이 먼저 찡해진다. 특히나 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 그녀는 앉아서 불편하게 등을 기대고, 아이를 가슴에 품어 지쳐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예쁜 여자가, 우리가 만든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을 가꾸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하며 밥도 잘 챙겨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별 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날 믿고 인생을 함께 하기로 감히..
다사다난 했던 2021년의 막달을 보내면서, 이제부터라도 기억을 더듬고, 최근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는 중인데, 올해는 많은 업무를 맡아서 정말 힘들었다. 지금은 방전이 되어 아무 의욕도 없는 상태다. 요즘 가끔은 후회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을 원망하며 자주 비난하곤 한다. 리더십이 부재한 학교장, 건성건성 듣고 대뜸 큰소리치는 교감, 중간 이음새 역할과 교통정리를 잘 못하는 것인지 일부러 안 하는 것인지 그 심중을 파악하기 힘든 우리 부장, 자기 일처리 하기 바쁜 다른 부장들, 그 속에서 편안하게 그리고 조용히 지내면서 방관하는 연식이 오래된 사람들. '나만 아니면 되지, 그런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가 느껴지는 부동의 기간제들...
너 같은 사람이 아직 기간제교사인 이유가 있더라. 능력도 없는데 노력도 안하면서 교사 해볼거라고 척하지만 아직까지 기간제교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겪어보면 왜 아직 그러한 상태인지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말을 한다. 내가 겪었던 기간제교사 4년의 시간은 배움과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배우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취해있었더라면 나도 신세한탄이나 하며 구조적인 사회의 문제점을 들먹이고 있었을테지. 또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내 과목 티오는 적으니까, 내 과목은 타교과에 비해 어렵잖아, 경쟁률이 높잖아, 일 병행하면서 시험 공부를 어떻게 해? 학교에 적응 중이니까 올해는 괜찮아, 올해는 일이 너무 많아서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괜찮아, 그러나 내년에도 공부하기는 힘들어 하면서 말이지. 교사가..
4월 20일. 할머니께서 84살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나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다. 월요일 오전 10시 20분경 운명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걸어 차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셨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침착한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더 큰 슬픔을 느꼈다. 학교 일을 정리하고 오후 6시에 퇴근했다. 아내는 임신중이라 상갓집에 오는게 아니라며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가 절대 오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아내는 마음이 불편했는지 이튿날 처갓댁 식구와 함께 이내 잠시 방문했다. 나는 오늘 오전 할머니의 입관 모습을 참관했다. 8년 전 할아버지 입관 모습은 어른들의 반대로 보지 못했는데 서른셋 가정을 이룬 나는 할머니 입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해 설날 이후 ..
어느덧 교사 5년차. 스무살 이후 목표했던 직업을 서른 셋 유부남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중등임용고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몇 권의 두꺼운 전공 서적들과 사설 교육학 학원 교재를 주문한 채, 노량진으로 직강을 들으러 가보려던 2011년 1월 대학교 3학년을 앞둔 22살이었던 내가, 11년 만에 정교사가 되었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아마도 이 길을 준비하며 우쭐함 마저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괜스레 마치 교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교사가 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나는 학생 때 바른 길만 걸어온 모범생이 아니었다. 공론장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다만, 친구들 무리에서 만큼은 돋보이기를 좋아했다. 또래 앞에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