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살까?
할머니 본문
4월 20일. 할머니께서 84살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나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다. 월요일 오전 10시 20분경 운명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걸어 차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셨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침착한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더 큰 슬픔을 느꼈다.
학교 일을 정리하고 오후 6시에 퇴근했다. 아내는 임신중이라 상갓집에 오는게 아니라며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가 절대 오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아내는 마음이 불편했는지 이튿날 처갓댁 식구와 함께 이내 잠시 방문했다.
나는 오늘 오전 할머니의 입관 모습을 참관했다. 8년 전 할아버지 입관 모습은 어른들의 반대로 보지 못했는데 서른셋 가정을 이룬 나는 할머니 입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해 설날 이후 할머니를 처음 뵙는 거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울음소리에 코끝이 찡해져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시어머니로서 때로는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울 일을 많이 시키기도 했고 엄마를 힘들게 했던 할머니. 나이가 지긋이 들어 살아 계실 때도 엄마는 할머니보고 오래 산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막상 할머니께서 운명하시니까 엄마는 펑펑 울었다.
나는 엄마의 눈물과 울음 소리를 듣고 심경이 복잡해졌다.
***
6월 6일 할머니 49재가 끝났다. 이상하게도 백운암에서의 시간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백운암에 도착했던 시간과 법당에서 지루한 마음을 숨기며 절을 하던 내 모습. 그리고 가족들의 모습과 법당 밖의 풍경들.
그 시간들을 통해서 할머니를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짐작이 안간다. 아직은.. 모르겠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을 이제는 현실에서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련함이라는 단어를 쓰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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