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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5년차 신규 고등학교 교사

역사하는사람 2021. 4. 10. 00:49

어느덧 교사 5년차.

스무살 이후 목표했던 직업을 서른 셋 유부남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중등임용고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몇 권의 두꺼운 전공 서적들과 사설 교육학 학원 교재를 주문한 채, 노량진으로 직강을 들으러 가보려던 2011년 1월 대학교 3학년을 앞둔 22살이었던 내가,

11년 만에 정교사가 되었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아마도 이 길을 준비하며 우쭐함 마저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괜스레 마치 교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교사가 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나는 학생 때 바른 길만 걸어온 모범생이 아니었다. 공론장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다만, 친구들 무리에서 만큼은 돋보이기를 좋아했다. 또래 앞에선 자신감이 있었고 늘 중심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공부도 조금, 운동도 조금, 놀기도 조금. 뭐 하나 뒤지지 않고 다 잘하고 싶었지만, 내 역량은 늘 부족했다. 하지만 학창시절 또래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을 확인 받고 무리에서 리더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경쟁 시험을 넘어서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다. 

이 시간들 속에서 나는 비로소 허욕을 버리고 벌거벗은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조금씩 단단해졌던 것 같다. 사실,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임용고시를 합격했다는 기쁨은 3일을 가지 않았다. 최종 발표 후 5분 동안, 작년 한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이상하게도 펑펑 울었지만 5분, 그게 다였다. 

곧바로, '앞으로는 지금까지 보다도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숙제를 끝냈는데, 또 숙제가 생긴 것 같았다. 

삶은 예전 기간제 교사를 할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날 사랑해주고 믿어주며 응원해준다. 경제적으로 더 나아진 것도 없고, 그냥 똑같다. 단지, 부모님과 처갓집에서 나보다, 집사람보다 더 기뻐해 주신다.

이미 그 이전부터 나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응원해주셨던 분들이기에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어른들께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 가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 과목에 대한 자신감과 애착이 더욱 강해졌고, 담임으로서 만난 우리 반 학생들에게 내 시간을 오롯이 더 마음 편하게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아이들과 한번 더 상담할 시간에 역교론 한 문장이라도 더 외우자... 같은 생각은 이제 없다. 

쫓기듯 수업 준비 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나는 4년 경력의 5년차 신규다. 다시,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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