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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살까?
너 같은 사람이 아직 기간제교사인 이유가 있더라. 능력도 없는데 노력도 안하면서 교사 해볼거라고 척하지만 아직까지 기간제교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겪어보면 왜 아직 그러한 상태인지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말을 한다. 내가 겪었던 기간제교사 4년의 시간은 배움과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배우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취해있었더라면 나도 신세한탄이나 하며 구조적인 사회의 문제점을 들먹이고 있었을테지. 또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내 과목 티오는 적으니까, 내 과목은 타교과에 비해 어렵잖아, 경쟁률이 높잖아, 일 병행하면서 시험 공부를 어떻게 해? 학교에 적응 중이니까 올해는 괜찮아, 올해는 일이 너무 많아서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괜찮아, 그러나 내년에도 공부하기는 힘들어 하면서 말이지. 교사가..
4월 20일. 할머니께서 84살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나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다. 월요일 오전 10시 20분경 운명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걸어 차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셨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침착한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더 큰 슬픔을 느꼈다. 학교 일을 정리하고 오후 6시에 퇴근했다. 아내는 임신중이라 상갓집에 오는게 아니라며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가 절대 오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아내는 마음이 불편했는지 이튿날 처갓댁 식구와 함께 이내 잠시 방문했다. 나는 오늘 오전 할머니의 입관 모습을 참관했다. 8년 전 할아버지 입관 모습은 어른들의 반대로 보지 못했는데 서른셋 가정을 이룬 나는 할머니 입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해 설날 이후 ..
어느덧 교사 5년차. 스무살 이후 목표했던 직업을 서른 셋 유부남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중등임용고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몇 권의 두꺼운 전공 서적들과 사설 교육학 학원 교재를 주문한 채, 노량진으로 직강을 들으러 가보려던 2011년 1월 대학교 3학년을 앞둔 22살이었던 내가, 11년 만에 정교사가 되었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아마도 이 길을 준비하며 우쭐함 마저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괜스레 마치 교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교사가 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나는 학생 때 바른 길만 걸어온 모범생이 아니었다. 공론장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다만, 친구들 무리에서 만큼은 돋보이기를 좋아했다. 또래 앞에선 ..
벌써 7월 4주차다. 코로나19 여파로 학교는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례없는 개학 연기에서부터 온라인 수업, 격주 등교까지. 각종 행사는 물론이고 방과후수업, 수련활동, 수학여행, 교원 평가의 중단까지.. 일상 수업에서도 모둠 활동은 전면 지양되고 모두 시험대형으로 앉아 일제식 강의 수업을 듣고 있다. 학생들은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듣고 일상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급식소에서도 한 자리씩 띄워 앉아 조용히 밥을 먹고 나간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교외에서 즐겁게 서로 이야기하며 활력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교사인 나로서는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좋다.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지나치게 교사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학생과 그런 분위기가 나는 솔직히 반갑다...
빈 교실에 앉아 온라인 강의를 찍고 잠시 쉬고 있었다. 고등학교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복도를 배회하시다가 우리반 교실에 왔다. 지역진로진학협회에 같이 나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가고 싶다. 나도. 그래서 가보기로 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반드시. 그리고 일단 가입했다.여러 활동을 해보고 싶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기회를 만들 수 없었고, 만들지도 않았다. 기간제 교사라서.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까. 늘 내게 꼬리표처럼 붙은 핑계는 똑같았다.간서치 이덕무처럼 나도 기회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다. 나도 펄펄 날고 싶다.
그가 쓰러졌다.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내게 곧잘 조언을 해주곤 했던 박선생님. 편안한 미소를 가지고 계시던 그 분은 이제 웃음이 없단다. 알아 듣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렇게 여기 누워있다. 그리고 여기, 한 여인이 우두커니 서있다. 상견례. 한 고비를 넘기고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었을 그녀는 이제 아무 표정이 없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박선생님의 얼굴을 읽을 수가 없다. 드디어 혼자서 숨을 쉰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수 있을까? 기적이 일어나길.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이제 제법 적응이 된 것 같다. 가르치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행정업무야 군대에서 하던 것이라 금방 적응이 되었지만, 교과수업은 정말이지 혼자 공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이제는 채점이다. 300개의 답안을 채점하기란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시험을 한 번 치르고 나니, 앞으로 정말 수업준비를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책임감을 더 가지자. 대충하지 말자...
그리스 신화에 보면 '라미아'(Lamia)라는 반인반수의 여자 괴물이 나온다. 제우스가 사랑한 여인이었으나 헤라여신의 질투로 아이를 잡아 먹는 괴물이 된 케이스다. 후대의 역사 기록에서 보면 라미아는 젊은 남성을 유혹해 정기를 빨아 먹는 악령 내지는 꽃뱀으로 묘사되고 있다. 라미아는 우리 문화에서 보면 일종의 도깨비다. 사람을 잡아 먹는. 한편으로 우리 문화에서는 사람을 도와주기도 한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도깨비는 언제나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을 지녔다. 이처럼 동서양의 역사와 관념이 다른 만큼 라미아가 우리의 도깨비와는 꼭 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의 '대중과 진실'의 관계다. 라미아에 대한 언급과 기록은 소크라테스에게서도..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은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 알고 있는 극작가인 만큼,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의 많은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과 정도만 곁눈질로 읽어 봤을 뿐... 이번에 읽었던 는 책 두깨도 얇고 복잡하지 않은 구성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번역이 잘 되어서 그렇겠지.. 내가 감히 원문을 읽을 능력은 없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간단하다. 인생은 배신과 불의, 나쁜 놈들도 가득하지만 역시나 착하고 선한 이들도 있기에 그래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 결국 선이 악을 관용으로써 이긴다는 것!? 사실 한편으로는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이상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가 16~17세기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