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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4.16 세월호 대참사와 보고계통에 대한 생각

역사하는사람 2016. 4. 28. 23:22

2014년 4월 16일 전역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날은 과장님들이 아침에 여단장실에서 회의를 했던 것 같으니까 아마도 수요일이 아니었나 한다. 나는 화학장교랑 지휘통제실에서 상황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YTN 뉴스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이 보도되었고 마침 회의를 끝내고 지통실로 들어오던 작전과장님과 정보과장님 지원과장님도 TV를 보자마자 한동안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아마도 9시 30분 채 안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만해도 분명 전원구조가 가능하다는 보도가 있었고 난 그러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점심시간, 간부식당에 방영되는 TV 속 내용에는 여전히 인원파악 중이라는 안내문구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세월호는 이미 바다 속에 90퍼센트는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여단장님 이하 모든 간부들은 엄숙했고 내 기분은 그때부터 더 이상 전역이 얼마남지 않은 말년 중위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운명을 달리하신 단원고 교사 중에 학과는 다르지만 동문선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믿을 수 없는 대참사는 교직이 꿈인 나에게 여러가지 아픔을 안겨주었다. 한편으로 끝까지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 앞에서 사명을 다한 그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런 생각과 질문을 끊임없이 해봤던 것 같다.

큰 훈련이든 평소든 간에 내 임무는 주로 상황조치였다. 이걸 2년 정도 하면 눈치가 생긴다. 그리고 요령이 생긴다.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화된 인지처리과정을 통해 기계적인 행동이 나오게 된다. 특히 나는 보고체계상 중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훈련에서는 연락장교로서 여단과 사단을 연결하거나, 당직계통에서는 예하대대와 사단을 직접 연결하는 당직사령의 임무를 수행했는데, 여기서 내가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는 (임무수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빨리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그 정보를 얼른 윗계통에 보고하여 책임을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 파악의 근거를 분명히해서 내게 돌아올 비난의 화살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보고계통의 책임과 역할이 이렇다 보니, 이 라인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상급부대(기관)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예하부대(기관)을 끊임없이 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 역시 예하부대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해 봤고, 또 BCTP나 KR연습, UFG 등에서 상급부대 연락장교도 해봤기 때문에 각각의 고충을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내 생각에 중간 연락망 역할에서 가장 요구되는 태도는 예하부대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이며, 상급부대의 꾸짖음과 독촉에도 버틸 수 있는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여단을 대표로 사단에 파견될 경우, 나의 직속 vip는 여단장님이고 이것을 사단 작전참모에게 전달하면, 사단 작전참모는 여러 계통의 정보를 종합해서 사단장님의 결심을 돕는 정보를 보고하는 식이다. 작전참모가 아무리 쪼으고 윽박질러도 나는 여단장님을 믿기 때문에 훈련상황에서 여단의 현장 상황조치가 완료된 후 나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항상 버텼다. 상황이 복잡할 때는 여단에서 깜박할 수 있으니 두 세 번 연락을 하지만, 그 이상 과하게 쪼아대며 괴롭히진 않았다. 중간에 내가 계속 연락을 하면 더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단장님께서도 평소에나 훈련때나 항상 나를 믿으셨고 우리 여단 작전과장님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큰 훈련에서 우리 여단은 항상 최우수였으며 단결력이 가장 훌륭했다. 이 성과가 나의 임무수행과 직접적으로 관련없다 치더라도, 평시든 훈련이든 실제상황이든 보고계통상의 믿음이 있었다.
이것은 결국 리더의 역량에 달린 문제다. 내가 모셨던 지휘관은 부하를 믿고 업무를 맡기면 기다릴 줄 알았으며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하고 어울릴 줄 아는 분이셨다. 그리고 보고를 받아야 하는 일이 생기면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셨고, 우선 현장에 있는 간부의 역량과 조치를 믿으셨기 때문에 선조치 후보고는 원칙이었다. 하달할 명령과 강조사항은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을 제외하고는 '상식'에 의한 조치가 우선되어야 함을 끊임없이 강조하셨다. 내 평생 그런 분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며칠전 방영된 그것이알고싶다 세월호편에서 다시 보게 된 청와대 안보실과 해양청본부(?) 와의 지휘/보고 상호작용을 보면서 나는 통탄을 금치 못했다. 상황이
급박한데 비해 지휘통제실에 있는 해양청본부 연락간부는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동요하지 않으려면서도 버벅되는 것 같았고, 청와대측 연락계통도 쓸데없이 과잉충성이 들어간 보고를 해야한다는 압박때문인지 사진이나 영상을 자꾸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지금 사람이 400명 넘게 죽게 생겼는데 서울에 있는 대통령이 그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는게 중요한가? 상식없는 보고를 하려 했다는 게 나는 너무 화가났다. 그 순간 2년 전 부대 지휘통제실 YTN TV 앞에서 '구조가능하다'라는 문구를 보며 안심하며 국가를 믿고 있던 내가 생각이 나서 정말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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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 배 규모가 어떻게 되고 대략적인 탑승객 총 인원은?

해양청 : 450명 가량 됩니다. 지금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빨리요.

청와대 : 상당히 많군요. 정확한 인원은 차후에 보고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인원 누락없이 일단 살리세요. 무조건. 정부측에서 모든 지원 가능한 방법을 투입할겁니다. 일단 다 달라붙으세요. 근처 인원들. 물불 가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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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명을 구하는 일을 먼저 해야할 국가가 vip에게 보고한다고 정확한 인원이나 사진 영상 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짓이다..

배 안에 그대로 대기를 명령한 사람도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게 맞지만, 그 잘못은 국가가 나서서 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가만히 보기에 국가는 아니 청와대 안보실에서 연락을 받고 명령한 그 담당자들은 한게 없고 아무런 죄도 없는 듯 행세하고 있다. 만약 내가 예전에 모셨던 여단장님이 그 청와대에서 연락을 처음 받았던 안보실 담당자였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실제로 우리 여단장님은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나는 반드시 상황이 완전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Vip보고도 좋지만, 자기 선에서 선조치를 하고 후보고하며 점차적으로 다시 연락을 취하며 상황파악 및 종합하는 게 유사시 보고계통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나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무능한 국가관료들은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벼슬이라고 생각하는 식의 생각이 정말 싫다. 특히 국회의원들 말이다. 내가 보건대,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느 일정선을 넘어가면 정의에서 타락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초심을 지킬 수 있는 자기만의 의식이나 서로 지적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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