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해질무렵>을 읽고 (부제 : 황석영을 만나다)

역사하는사람 2015. 12. 7. 21:34

 며칠 전 거사를 치르고 제법 여유가 생기자 나는 선물로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해질 무렵>(2015)을 집어들었다. 

 내가 황석영님을 만난 건 햇수로 따지면 10여년은 족히 넘었지만, 그의 글에 대해 공감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스무살이 넘어서였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아마도 대학교 2학년 2학기 <서양사강의>수업이었던 것 같다. 항상 맨 뒤에 혼자 앉아서 수업을 듣곤 했는데, 전공수업인 만큼 같은 과이겠거니 했으나 내가 아는 바로는 도무지 몇 학번이고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형준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사람은 처음본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을 하는 타과 사람이겠거니 했다. 고대 지중해세계 수업을 진행할 때만해도 강의실에는 에어컨 공기가 가득했지만, 중세시대가 끝날 때 쯤 창밖엔 이미 은행잎이 연신 떨어지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외로웠던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 주변자리를 맴돌다가, 어느 날은 물과 캔커피 한개를 책상에 올려 놓고 도망갔던 것 만은 확실하다. 수업이 끝난 후 고맙다고 인사하며 강의실을 나갔고, 나는 따라갔다. 그리고는 도서관 앞에서 그녀를 불러 세워 연락처를 받고자 했다. 내생애 이른바 첫 헌팅이었다. 경상도 출신이었던 나와 형준이형에게는 전문용어로 까데기였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울산대학교에서 한학기 교환학생으로 왔으며 아무 연고도, 인맥도 없는 이 대학교에서 이런식으로라도 환영해주어 고맙다는 것이다. 나는 멋쩍었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수업도 같이 듣고 식사도 함께 했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기운이 스멀스멀 불어올 때쯤 태어난 나로서는 이같은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심코 그녀에게 생일을 함께 보내자는 말을 던졌고 승낙을 받았다. 어설펐던 그녀와 나 사이의 이음새를 좀 더 단단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었다.

 우리는 북적이는 명동거리를 돌아다니며 영화도 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날 나는 그녀에게서 황석영을 선물받았다.

<개밥바라기별>

 그녀는 간단하지만 소모품은 아닌, 무언가 기억될 만한 선물로는 책이 제격이라고 둘러대며 자신이 평소 보고싶었던 이 책을 내게 선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보고 자기도 빌려 달라며 의미심장한 첨언도 빼놓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도 이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나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녀는 재주껏 꼬셔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가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느꼈던 나는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의 위치에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상대 수비수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비슷한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그녀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에이컨 공기가 가득했던 강의실 속 관계로 돌아갔다. 

 하여튼 그 날 이후로 나는 진지하게 거장 황석영님을 만났으며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어릴 적 국어교과서에서나 읽었던 <삼포가는 길>이라든지 아버지께 선물받은 <모랫말아이들>같은 책을 대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부텍스트들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군대에서 황석영님의 작품을 자주 탐독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책장에 있는 그의 작품을 꺼내 볼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나와서 읽을 때마다 나는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더욱이 그의 작품에는 미생 러브 스토리가 항상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얼굴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유에서 나는 그의 문학을 사랑한다.

 아마 학군단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쯤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술에 조금 취해있었던 목소리였고 시덥잖은 안부를 주고 받으며 통화했던 그 해가 그녀와의 마지막 교류였다.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도 내 이름 석자정도는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p.s 그를 만나게 해준 김수현님에게 이곳에서나마 고마움을 전한다.